
위 사진은 현미경으로 찍은 칫솔모 끝입니다. 왼쪽 세 가닥은 절단면 그대로인 일반모, 가운데 두 가닥은 AR 공법으로 끝을 둥글게 마감한 일반모, 오른쪽 세 가닥은 초미세모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 사진 한 장으로 거의 끝납니다.
앞 글에서 초미세모는 힘이 걸리기 전에 눕기 때문에 잇몸을 찌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보는 잇몸 손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손상이 어디서 오는지, 만드는 사람 눈에 보이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단면 그대로인 모가 동물 칫솔에는 많습니다
사람 칫솔은 식모하고, 컷팅하고, 연마(그라인딩)로 끝을 둥글게 마감하는 공정이 표준화되어 있어서 절단면 그대로인 제품이 거의 없습니다. 동물 칫솔은 다릅니다. 이 공정을 생략한 제품이 상당수 유통됩니다. 사진 왼쪽 세 가닥이 그 상태입니다. 끝이 비스듬하게 잘려 있고 모서리가 살아 있습니다. 앞 글에서 계산했듯 일반모 터프트 하나는 잇몸에 120~250 mN을 얹을 수 있는데, 그 힘이 이 모서리 스무 개로 잇몸을 긁습니다.
진료실에서 보는 잇몸 손상의 상당 부분이 이 제품군에서 나온다는 것이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제 판단입니다. 손상은 실재합니다. 다만 범인은 뾰족한 모가 아니라 뭉툭하게 잘린 모입니다.

연마로 둥글게 만들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식모 후에 갈기 때문에 연마휠은 터프트 상단 바깥쪽에 먼저 닿습니다. 터프트 안쪽, 경사 트림의 낮은 부분, 멀티레벨 헤드의 낮은 터프트는 덜 갈립니다. 라운딩 품질 연구들이 제품에 따라 적절한 라운딩 비율을 0%부터 90% 이상까지 극단적으로 다르게 보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갈아낸 면에는 미세한 버(burr)와 균열, 비대칭 형상이 남는데, 연구에서 '부적절한 라운딩'으로 분류되는 것이 대부분 이런 형태입니다.
이 혼란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1995년에 이미 모 끝 라운딩 연구 9편을 모아 검토한 종설이 나왔는데, 브랜드 간 비교 결과들이 서로 어긋난다는 것이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저자들은 세 가지 평가법을 견주어 본 뒤 모 끝을 45도 각도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방법을 '쓸 만한 기법'으로 골랐습니다. 끝이 둥근 모가 각진 절단면 모보다 잇몸과 치아를 덜 마모시킨다는 전제는 그때도 같았습니다. 30년 전에 정한 방법이 지금도 쓰인다는 건, 모 끝을 판정하는 데 현미경 말고 더 나은 도구가 아직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위 사진을 찍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화학 라운딩은 한 가닥 단위로 마감됩니다
메이브러쉬 칫솔은 앵커를 기준으로 한쪽 끝은 미세모, 반대쪽 끝은 원통으로 나오는 단면 미세모 구조입니다. 한 가닥에 미세모 끝이 있으니 식모 후에 컷팅하고 갈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를 만드는 단계에서 원통 쪽 끝을 약품으로 녹여 둥글게 마감한 상태로 납품받습니다. 이것이 AR 공법입니다.
식모 전에 한 가닥 단위로 처리되기 때문에 터프트 안쪽이든 바깥쪽이든, 트림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끝이 같은 형상입니다. 녹여서 정리된 표면에는 버와 균열이 없습니다. 사진 가운데 가닥의 끝이 매끈한 이유입니다.
라운딩은 쓰면서 무너집니다
한 가지 더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라운딩은 한 번 정해지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2026년에 나온 파일럿 연구에서는 성인 10명이 같은 수동 칫솔을 하루 두 번, 6개월 동안 쓰는 동안 모 끝을 360도로 돌려 가며 현미경으로 추적했습니다. 허용할 만한 라운딩을 보인 모의 비율이 새 칫솔에서 64%였다가 6개월 뒤 29%로 떨어졌습니다. 새것일 때부터 완벽하지 않았고, 쓰면서 더 무너진 것입니다. 돌려 가며 보니 정면 사진 한 장으로는 놓치기 쉬운 비대칭 마모도 드러났습니다. 덤으로 새 칫솔 모의 87%에서 표면 잔류물이 발견됐고 쓰기 시작하면 17~18%까지 줄었는데, 저자들은 제조 공정에서 묻은 것일 수 있다며 새 칫솔은 쓰기 전에 헹구라고 권했습니다.
사람 칫솔, 열 명, 폴리아미드 6.12 모라는 조건이니 반려동물 칫솔에 그대로 옮길 수치는 아닙니다. 그래도 만드는 입장에서 얻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처음의 라운딩 품질이 좋을수록 무너져도 버틸 여유가 있고, 처음부터 절단면이라면 그 여유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 마감된 모도 몇 달 쓰면 새것과는 다른 물건이 되니, 교체 주기는 취향이 아니라 잇몸의 문제입니다. 새 칫솔을 한 번 헹구고 쓰기 시작하는 것도 돈 안 드는 습관입니다.
끝이 솜털같이 뾰족해야 진짜 미세모
안전을 담보하는 건 뾰족한 쪽이 아니라 반대쪽입니다.
단면 미세모 터프트 20가닥 중 절반의 끝은 미세모, 절반은 화학 라운딩된 일반모입니다. 두 끝의 역할이 다릅니다. 미세모 끝은 치간과 치은열구로 들어가고, 라운딩된 일반모 끝은 치면을 닦습니다.
잇몸에 더 큰 힘을 얹는 쪽은 일반모 끝입니다. 그러니까 잇몸 안전을 실제로 위협하는 건 뾰족한 미세모가 아니라 '일반모 끝의 라운딩 품질'입니다. 저희가 화학 라운딩 모를 고집하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면, 반려동물 칫솔에서 확인할 것은 끝이 뾰족한지가 아니라, 마감이 어떻게 되어있느냐 입니다.
참고자료
- The effects of different levels of brush end rounding on gingival abrasion
- Damaging effects of toothbrush bristle end form on gingiva
- Evaluation of two soft manual toothbrushes with different filament designs
- The effect of tapered toothbrush filaments compared to end-rounded filaments
- A review of current toothbrush bristle endo-rounding studies
- In vivo pilot study on toothbrush filament end-rounding and surface integrity
라운딩 마모 추적 연구는 사람 성인 10명, 폴리아미드 6.12 모 칫솔을 6개월 사용한 파일럿 연구입니다. 반려동물 칫솔에 그대로 옮길 수치는 아니며, "라운딩은 시간이 지나며 무너진다"는 경향성 확인 목적으로만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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